수건인쇄

평생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며 아들 칭린을 돌봐온 여성 딩쯔타오는 건축업으로 성공한 아들이 마련한 부유한 주택에 들어선다. 아들은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글자도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집에 들어서며 갑자기 “창 앞의 대나무, 맑고 푸름이 홀로 기이하구나”라며 시구를 읊는다. 딩쯔타오는 집 안의 값비싼 물건들을 보고는 모두 빼앗길 것이라며 “총개머리에 맞았다”고 소리친다. 살기 위해 잊힌 기억들이 딩쯔타오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연매장>은 1950년대 중국에서 벌어진 토지개혁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토지개혁은 중국의 공산국가 건설을 위해 피할 수 없던 과제였으나 그 과정에서 무의미한 희생도 뒤따랐다. 지주 계층에 대한 마녀사냥식 반동분자 색출로 인해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 속에서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말한다. “누구를 죽여야 한다고 하면 죽였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지,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네.”“도가 지나쳤다고 들었어.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고.”

딩쯔타오는 지주라는 이유로 온 가족과 기억을 잃고 평생 가난했으나, 자유시장경제가 침투한 현대 중국에 사는 아들 칭린은 개발회사의 지사장까지 올라 ‘사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부유하게 산다. 공산국가 건설 운동이 휘몰아친 과거와 개혁·개방 이후 현대 중국 사회의 간극이 두 모자의 모습을 통해 반영된다.

칭린은 후베이성의 저택을 탐사하며 어머니와 얽힌 비밀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나 어머니의 망각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평생 이 일을 들추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역사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고통의 증언이 필요하다. 저택의 비밀을 풀어나가던 칭린의 친구는 말한다. “너는 필요 없을지 몰라도 역사는 진실이 필요하거든…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분량이 꽤 되는 소설이나 이야기 구분이 세세하고 전개가 빠른 편이라 읽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다. 문장은 간결하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이지만 무언가를 단언하거나 쉽게 비판하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작품은 “충실하고 중후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현실주의적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7년 루야오문학상에 선정됐으나, 중국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중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을 써왔던 작가는 2020년 코로나19로 봉쇄된 우한의 참상과 생존기를 담은 <우한일기>를 출간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어린 시절 부유한 지주의 딸이었던 그는 비슷한 지주 가문의 아들 루중원과 결혼한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들에게 ‘토지개혁’의 바람이 불어온다. 당시 지주들은 광장으로 끌려나가 갖은 수모를 겪고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하기 일쑤였다. 루씨 가문은 악덕 지주가 아니었음에도 모욕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집에서 일하던 하인들을 포함해 가족 전체가 죽음을 택한다.

홀로 살아남은 딩쯔타오는 가족들의 관을 구할 수 없어 곧바로 흙에 시신을 묻는 ‘연매장’을 한다. 토지개혁조와 햇빛이 시신을 들춰내 모욕할 수 없도록 밤새 삽을 들어 가족들의 몸 위로 흙을 덮는다. 그리고 강물에 빠져 모든 기억을 잃는다. 하지만 강물에서 그를 구해낸 사람들 수건인쇄 덕분에 새 삶을 살아간다. 그를 구해준 군의관 우의사와 결혼해 칭린을 낳는다.

딩쯔타오는 하나둘씩 과거의 기억을 따라간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는 속으로 외친다. “이런 밤을 겪었는데 제가 살아 있는 것 같나요?” 아들 칭린은 어머니의 변화를 걱정한다. 그러던 중 옛 친구에게서 후베이성 서쪽에서 독특한 형태의 지주 저택이 발견되었다며 함께 가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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